
개장 첫 주말의 휘닉스파크는 보통 인파와 대기 줄로 가득한 전쟁터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오픈은 예상과 달리 조용하고 평화로웠고, 그 덕분에 저는 여유로운 슬로프에서의 집중 카빙, 폴대를 활용한 러닝 크루 턴, 그리고 6/6 바인딩 세팅이라는 세 가지 새로운 시도를 온전히 제 페이스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160cm 보드와 단단한 설질이 만든 도전, 로컬 라이더들과의 자연스러운 교류, 그리고 젊은 세대의 라이딩 문화를 직접 체험한 생생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한산한 슬로프 속에서 찾은 집중의 힘
시즌권자가 가장 긴장하는 순간 중 하나는 바로 개장 첫 주말입니다. 수많은 인파로 슬로프가 가득 차고 리프트 대기 줄이 끝없이 이어질 것을 각오하며 휘닉스파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풍경은 전혀 달랐습니다. 주말인데도 주차장부터 베이스까지 눈에 띄게 한산했고, 챔피언 슬로프를 올려다보니 사람 밀도가 작년의 절반도 안 되는 듯했습니다.
"리프트 줄이 전혀 없어 좋긴 한데, 한편으론 좀 슬프네"라는 농담이 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어제는 사람이 많았다는 정보를 들으니 더욱 신기했습니다. 작년 시즌 오픈 때와는 확연히 다른 여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슬로프 주변 환경도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나무가 많이 정리되고 지형이 변해 마치 다른 스키장에 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새로운 슬로프를 만들거나 위쪽과 연결하려는 공사가 진행 중인 것 같았고, 예전에는 없던 펜스들이 곳곳에 생겨 자유롭게 온 슬로프를 누비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한산함은 저에게 기술적 집중의 완벽한 환경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평소라면 주변 보더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시야 확보에 급급했겠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나 자신의 움직임과 눈의 질감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개장 초기 특유의 단단한 설질 덕분에 엣지가 눈을 파고드는 감각이 매우 명확하게 전달되었고, 큰 호를 그리는 카빙을 여유롭게 반복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새 보드와의 첫 만남, 그리고 러닝 크루 턴의 발견
이번 시즌 새로 맞춘 160cm 보드는 분명 잘 나가는 장비였지만, 첫날만큼은 제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보드 길이가 길어진 만큼 컨트롤에 필요한 힘과 타이밍이 달라졌고, 개장 초기의 단단한 설질은 "눈이 너무 힘들어서 엣지가 박히지 않는다"며 몇 번의 넘어짐을 선사했습니다. 다른 라이더들이 유려하게 슬로프를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몸을 풀고 왔거나 어제부터 탔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새 장비와의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날 가장 큰 수확은 폴대를 활용한 '러닝 크루 턴' 연습이었습니다. 보드와 폴의 조합은 여전히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리듬감을 익히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도구는 없었습니다. 사람이 적은 슬로프 덕분에 폴대를 들고 챔피언 슬로프를 내려올 수 있었고, 이를 턴의 시작과 끝을 마킹하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폴대를 마치 지휘봉처럼 활용하며 턴의 박자를 만들자, 그동안 모호했던 엣지 체인지 타이밍이 시각적·촉각적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폴을 앞세우며 리듬을 타기 시작하니 상체의 불필요한 흔들림이 줄어들고 골반의 로테이션이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마치 육상 선수가 팔치기를 통해 전진력을 얻듯, 폴대를 짚고 넘어가며 만드는 리듬은 하체에만 집중되어 있던 시야를 상체와의 조화로 확장해 주었습니다.
- 폴대를 살짝 전방에 두고, 폴이 골반 옆을 지나가는 타이밍에 엣지 체인지
- 폴의 진행 방향과 가슴, 시선의 방향을 최대한 일치시키기
- 팔이 아니라 발바닥과 골반이 먼저 움직이고, 팔은 그 흐름을 '표시'만 하는 느낌
- 턴을 "그냥 돌아가는 동작"이 아니라 "분명한 박자를 가진 움직임"으로 인식하기
이 리듬감이 몸에 익자 고속 주행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보드에 무슨 폴대냐"라는 편견을 버리고 기술적 완성도를 위해 다양한 보조 수단을 활용하는 유연한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6/6 바인딩 세팅: 젊은 감각과의 만남
이날 제가 시도한 가장 파격적인 실험은 바인딩 각도를 기존 9/9에서 6/6으로 변경한 것입니다. 함께 라이딩한 지인이 "6/6 각도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미리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지만, 그 말 속에는 세팅 하나가 라이딩 전체의 감각과 자신감에 미치는 영향의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양발 모두 동일한 덕 스탠스로 맞추는 이 세팅은 최근 젊은 라이더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퍼지고 있는 스타일입니다. 기존의 전향각 세팅과 비교했을 때 6/6 세팅의 가장 큰 차이는 몸의 무게 중심이 데크 정중앙에 자연스럽게 놓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160cm 보드 길이와 맞물려 컨트롤이 어색하고 힘 전달이 다소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적응이 되자 놀라운 변화들이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스위치 라이딩이 놀라울 정도로 편해졌고, 슬로프 위에서 방향을 바꾸거나 가벼운 그라운드 트릭으로 연결하는 흐름이 훨씬 매끄러워졌습니다. 이는 슬로프를 단순히 빠르게 내려가는 공간이 아닌 '놀이터'로 인식하는 새로운 세대의 라이딩 철학을 장비 세팅을 통해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대칭적 무게 중심으로 인한 스위치 라이딩의 용이함
- 프리스타일 트릭과 그라운드 무브의 자연스러운 연결
- 기술적 효율보다 자유로운 움직임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현대적 접근
장비 세팅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라이더의 철학과 스타일을 반영하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감각을 수용하되 그 안에서 자신만의 최적점을 찾는 것이 진정한 라이딩의 재미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 한산한 슬로프가 남긴 소중한 선물들
이번 휘닉스파크 개장 첫 주말은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감각을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새 보드와의 첫 만남, 달라진 슬로프 환경, 러닝 크루 턴이라는 새로운 연습법, 그리고 6/6 세팅이라는 파격적 실험이 모두 섞여 평소와는 다른 밀도 높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한산한 슬로프는 단순히 편하게 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라이딩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었습니다. 주변의 혼잡함이 없으니 내 몸의 어색함과 장비의 변화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 불편함을 마주하며 하나씩 수정해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로컬 라이더들과의 자연스러운 교류도 기술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트렌드와 보조 도구를 유연하게 수용하되, 그 안에서 자신만의 최적점과 라이딩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 기술적 정석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로움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감각을 이해하면서도, 안전과 개인적 한계를 고려하는 균형 잡힌 접근. 이것이 바로 매 시즌 스노보드장을 찾게 만드는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용했던 이 개장 주말이, 저에게는 "분명히 한 발자국은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치지 않고 행복한 겨울 시즌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시즌도 끊임없는 도전과 성장의 여정을 이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