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노보드 장비를 살 때 가장 먼저 무엇을 보시나요? 일반적으로 플렉스 지수나 캠버 타입 같은 스펙을 우선시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디자인이 장비 선택의 최우선 기준이었습니다. 특히 흰색 계열 데크는 어떤 웨어와도 조화를 이루며 설원에서 시각적 통일감을 주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미적 선택이 실제 라이딩 실력 향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디자인 vs 스펙, 초보자의 우선순위
스노보드 장비를 고를 때 저는 솔직히 '하차감'부터 따졌습니다. 리프트에서 내릴 때 주변 시선을 사로잡는 그 특유의 분위기 말입니다. 바탈리온(Bataleon) 브랜드의 UFO 디자인 데크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흰색 베이스에 독특한 그래픽이 들어간 이 모델은 시각적 완성도가 뛰어났고, 바인딩까지 세트로 구성했을 때 통일감이 살아났습니다.
여기서 바탈리온의 3BT(트리플 베이스 테크놀로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합니다. 3BT란 데크의 노즈와 테일 부분을 살짝 들어 올린 구조로, 일반 플랫 보드보다 엣지 걸림이 적어 슬라이딩 턴 시 안정감을 주는 기술입니다(출처: Bataleon 공식 사이트). 쉽게 말해 초보자가 턴하다가 앞쪽 엣지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를 줄여주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제가 매장에서 들었던 스펙 설명은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플렉스 지수가 43이라는 게 중간 정도의 강도라는 건 이해했지만, 정작 제 눈은 데크의 색상과 그래픽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초보자는 부드러운 플렉스(30~40)를 선택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그 정도 스펙 차이는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장비의 무게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같은 사이즈라도 데크에 따라 수백 그램씩 차이가 나는데, 가벼운 모델일수록 공중 기술이나 빠른 방향 전환이 쉬워집니다. 저는 두 개의 후보 데크를 직접 들어보고 더 가벼운 쪽을 선택했는데, 이런 물리적 비교는 온라인 쇼핑으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캠버 구조의 선택, 국내 vs 해외 환경
데크를 고를 때 또 다른 고민은 캠버 구조였습니다. 캠버(Camber)란 데크를 바닥에 놓았을 때 중앙 부분이 살짝 떠 있는 아치형 구조를 말하며, 이는 엣지 그립력과 반발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크게 플랫 캠버와 마운틴 캠버(로커)로 나뉘는데, 각각의 특성이 극명하게 다릅니다.
플랫 캠버는 말 그대로 데크가 거의 평평한 구조로, 엣지 전체가 지면에 고르게 닿아 안정적인 턴이 가능합니다. 반면 마운틴 캠버는 노즈 부분이 위로 올라간 형태로, 파우더(깊은 눈)에서 데크가 눈에 박히지 않고 위로 떠오르는 특성이 있습니다. 매장에서는 제게 해외 라이딩까지 고려한다면 마운틴 캠버를 추천했는데, 여기서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국내 스키장은 대부분 압설 또는 아이스반 상태입니다. 압설이란 인공 제설기로 뿌린 눈을 정설차로 단단하게 눌러 만든 슬로프를 의미하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엣지가 얼음판에 정확히 물려야 미끄러지지 않습니다(출처: 한국스키장경영협회). 마운틴 캠버는 노즈가 높아 접설면이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 환경에서는 엣지 그립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결국 플랫 캠버를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장의 실력 향상이 우선이었고, 해외 파우더는 나중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비를 살 때 '미래 대비'를 강조하는 의견도 있지만, 제 경험상 초보 단계에서는 현재 환경에 맞는 장비가 훨씬 중요합니다. 잘못된 캠버 선택은 기본기 습득을 방해하고 나쁜 습관을 고착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또 다른 동료는 중고로 구매한 데크에 문제가 생겨 버튼(Burton)의 홈타운 히어로 모델을 새로 구매했습니다. 이 모델은 하차감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데, 실제로 보니 색상 조합과 브랜드 로고 배치가 고급스러웠습니다. 다만 이 모델은 플렉스가 제법 높은 편이라 초보자가 제어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실전 라이딩에서 느낀 장비의 역할
새 장비를 들고 슬로프에 올랐을 때, 저는 바인딩 세팅부터 다시 점검했습니다. 바인딩 각도는 앞발 +15도, 뒷발 -6도로 설정했는데, 이는 프리스타일 라이딩에 가장 무난한 덕 스탠스(Duck Stance)입니다. 여기서 덕 스탠스란 양발을 오리발처럼 바깥쪽으로 벌린 형태를 말하며, 정방향과 역방향 라이딩을 모두 고려한 세팅입니다.
초반 몇 번의 활주에서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힐 턴과 토 턴의 차이였습니다. 힐 턴(뒤꿈치 쪽 엣지로 도는 턴)은 비교적 자연스러웠지만, 토 턴(발가락 쪽 엣지로 도는 턴)에서는 상체 로테이션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로테이션이란 턴 방향으로 어깨와 시선을 먼저 돌려 몸의 회전력을 만드는 동작인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데크가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그냥 미끄러집니다.
솔직히 새 장비의 성능보다 제 기술의 한계가 먼저 드러났습니다. 아무리 좋은 데크와 바인딩을 써도 로테이션과 체중 이동이 정확하지 않으면 턴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장비가 주는 하차감과 만족도는 분명 존재했지만, 실력 향상의 핵심은 결국 반복 연습이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다만 3BT 기술 덕분에 엣지 걸림 사고는 확실히 줄었습니다. 일반 캠버였다면 앞쪽 엣지가 눈에 박혀 넘어졌을 상황에서도, 들려 있는 노즈 부분이 충격을 흡수해 줬습니다. 이 점만큼은 기술적 선택이 실전에서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 사례였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스노보드 장비 선택에서 디자인과 하차감을 우선시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본인의 실력 수준과 주로 타는 환경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제가 플랫 캠버를 선택한 건 국내 압설 환경에서 기본기를 다지기 위함이었고, 이 판단은 지금도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해외 파우더를 경험하게 되면 그때 마운틴 캠버나 파우더 전용 데크를 추가로 구매해도 늦지 않습니다. 장비는 실력을 보조하는 도구일 뿐, 실력 자체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